군수업자 오스카 쉰들러와 그의 애인은 말 안장위에 앉아 언덕 아래에서 벌어지는 살육을 그저 내려다볼 뿐이다.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게토(ghetto) 구역에서 벌어진 독일 나치에 의한 잔혹한 유태인 학살, 그 상황을 먼 발치에서 무심하게 바라보는듯 영화 앵글은 롱샷으로 돌아간다. 

그게 더 비극적이고 섬뜩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무미건조한 일상처럼 이뤄지는 살육, 그리고 밀려오는 슬픈 무력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년作)에서 가장 먹먹한 장면이다. 유태인들이 거주하는 게토는 원래 중세시대 십자군의 살육으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지역이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 지역의 게토는 인간 사냥터로 돌변했다. 불과 80년전의 역사다. 

어떤 의미로든 물리적인 접촉을 강제하는 '격리'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는 의외로 크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SNS, 유투브와 같은 온라인 채널에선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가짜뉴스까지는 아니지만 기성 언론들도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가면서 불안을 중계한다. 과거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때에도 이정도였는지 궁금하다. 

지난 31일 오전, 중국 우한에서 1차 전세기로 367명의 교민들이 귀국했다. 이어 1일에는 2차 전세기를 통해 327명의 교민들이 돌아왔다. 

교민들을 수용할 임시 격리 시설로 아산, 진천이 결정된 것을 놓고, 한때 음모론이 제기됐다. 입국을 희망하고 교민 신청자가 늘어나면서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수용 장소를 변경됐음에도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악플들이 넘쳐난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도 있었다.

특히 시기적으로,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지형의 윤곽이 도드라지기 시작하면서 온라인 공간은 더욱 치열한 진영 공방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인류애, 생명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들까지도 필요하면 공방 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생경하다.   

비록 몇방울의 오염수가 섞이더라도 놀라운 자정 기능을 거쳐 언제나 맑은 식수를 공급하는 강물처럼, 온라인 공간에서도 집단지성이라는 ‘보이지않는 손’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기대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오염수가 너무 많아졌고 독해진 반면 집단지성의 힘은 약해져 자정 기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느낀다. 

국내 뿐만 아니다.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은 30일자(현지시간) 유럽발 리포트를 통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과정에서 인종차별, 인종혐오(Xenophobia)가 커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유럽에서 중국인을 포함해 아시아인들 전체를 싸잡아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 병원균처럼 보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의 한 매체가 '노랑의 공포'를 헤드라인 제목으로 노출시켰다가 항의를 받았다는 소식도 전했다. '노랑'은  아시아인, 황인종을 의미하는 인종차별적인 단어다. 

온라인 괴담이 넘쳐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인종주의가 다시 창궐하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도 집단지성의 힘이 약화된 것은 마찬가지인듯 하다. 

지식의 개방성이 극대화된 온라인 채널은 급성장했으나 오히려 집단지성은 더 약화됐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많겠지만 이에대한 몇가지 피상적인 현상들은 얘기할 수 있다. 

온라인 공간이 이전보다는 분명히 과격해졌고, 과거 오프라인에서나 이뤄졌던 쟁점들이 이제는 그대로 온라인으로 무대가 옮겨졌다. 또한 온라인 공간의 참여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었고. 연령층도 참여도 크게 넓어졌다. 

반면 오프라인은 상대적으로 더 조용해 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에 오프라인에서 조용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선 딴사람 처럼 돌변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온라인에서 넘쳐나는 정보들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 조회수가 많은 영상들은 꼭 팩트 체크'를 하는 습관이 생기게 된 것은 이러한 불신의 시대상을 방증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현재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있는 인종차별과 인종주의적 편견을 담은 괴담과 가짜뉴스, 과격한 주장들은 80년전 폴란드 게토지역에서 일상처럼 무덤덤하게 진행됐던 학살이 연상된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놀이하듯 저질러지고 있는 온라인상의 폭력과 광기를 집단지성으로 제어하기위한 노력과 공감대가 더욱 절실해졌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우리 국민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률이 그동안의 상승세를 멈추고 2019년에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4583가구·1만864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미디어패널조사에서 SNS를 이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7.7%로 집계됐다. 지난 2011년 첫 조사에서 16.8%로 집계된 SNS 이용률은 2018년에 48.2%까지 상승했지만 이제 그 기세가 꺽였다.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요즘 주위에는 SNS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가 많아졌다. 온라인 공간이 효율적인 정보교류의 공간을 넘어 이제 과잉 간섭과 감정 에너지가 지나치게 소모되는 장으로 변질됐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온라인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온라인의 자정 기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온라인에서 느껴지는 피로감과 무력감,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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