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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로 보는 서버업계 경쟁의 역학 관계

백지영 기자의 데이터센터 트랜스포머 10.02.19 13:28

지난 몇년 간 국내 유닉스 서버업계는 정말 정말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뭐 워낙 뒷단에 있는 엔터프라이즈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그다지 끌지도 못할 뿐더러, 경쟁 구도가 무지하게 단순화됐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선 한국HP 아니면 한국IBM이죠. 한때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함께 3파전을 벌였으나 최근 오라클에 인수되며 이마저도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오라클이 최근 썬의 유닉스칩인 ‘스팍(SPARC)’에 대한 애정(?)을 보이면서 살짝 기대를 가져보긴 합니다만. 대형 유닉스 서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IBM, HP와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오라클의 선전포고를 시작으로, 이 세 업체의 경쟁구도가 재미있어질지는 조금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세 업체의 경쟁구도를 살펴보면, 현재까지는 오라클, HP vs IBM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엑사데이타2를 출시하면서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오라클-HP유닉스 조합의 고객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결별은 조금 무리지요. 오라클은 사실상 오랜 친구였던 HP보다 여러 분야에서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IBM에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현재의 IBM 모습은 썬과 HP 고객, “니들 남자는 내가 모두 빼았겠다”는 나쁜 여자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IBM은 최근 “2009년 한해 동안에는 550곳의 썬 고객과 250곳의 HP 고객 등 800곳 이상의 고객사가 자사 시스템으로 전환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했었지요. 이같은 IBM의 모습이 HP와 오라클의 입장에선 얄미울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같은 모습은 최근 게재된 광고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지난해 ‘2009 오라클 오픈월드’때 게재됐던 광고를 보시죠. 아예 대놓고 IBM의 가장 빠른 서버보다 오라클+썬이 두 배 이상 빠르지 않으면 10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조롱했었죠. 앞으로도 어떤 광고가 계속해서 나올지 기대됩니다. 최근 IBM도 차세대 ‘파워7’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두가지 광고를 내놓았습니다. (물론 제가 보지 못한 광고 시안들은 훨씬 많겠지만) 우선 HP에 대해서는 “덩치만 크고 전력은 더 많이 잡아먹는다”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크기가 크면 성능은 더 좋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건만, 이같은 내용이 HP의 유닉스 서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놀리는 듯 합니다. 크기는 10~20배 정도 크지만 성능은 28% 더 좋고, 에너지 사용은 83%나 더 많다는 내용이네요. 실제 사이즈까지 게시하면서 ‘슈퍼돔(Superdome) vs 슈퍼 파워(Superpower)’라고 비아냥거립니다. 64코어의 인테그리티 슈퍼돔(HP의 유닉스 서버 브랜드)보다는 자사의 32코어 기반 파워 750 익스프레스(파워는 IBM의 유닉스 프로세서 이름)를 어서 비교해보라며 다그치는 듯 합니다. 썬을 겨냥한 광고를 보면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태양(썬)을 가리고 있는 행성(플래닛)이니까요. 뭐 거의 개기일식 분위긴데요? 태양이 달이건, 지구건 언제쯤 제치고 나올지 기대됩니다. 댓글 쓰기

‘롤리팝’으로 데뷔한 2NE1, 삼성폰 모델로 변신…결과는?

윤상호 기자의 DIGITAL CULTURE 10.02.16 15:38

삼성전자가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폴더폰 ‘코비F’의 모델로 ‘투애니원(2NE1)’을 뽑았다고 16일 발표했습니다. 2NE1은 4인조 걸그룹으로 작년 데뷔와 함께 광고업계 블루칩으로 떠오른 신예들인데요.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은 의외라는 평가가 대다수입니다. 2NE1이 작년 LG전자 ‘롤리팝폰’을 통해 얼굴을 알린 그룹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같은 소속사의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과 함께 부른 ‘롤리팝’으로 처음 공중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CM송 ‘롤리팝’은 각종 음원차트까지 석권하며 지금의 2NE1을 만드는데 일조했죠. ‘롤리팝폰’도 대박을 냈습니다. 지난해 3월 출시 이후 국내 시장에서 8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상반기 LG전자가 사상 첫 국내 점유율 30% 이상을 기록하는 것에도 효자 노릇을 했죠. 바로 이 지점이 삼성전자의 결정이 의외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광고업계에서는 흔히 모델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후광효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깊게 고민합니다. ‘2NE1’의 경우 LG전자 휴대폰 모델을 했던 시기가 최근이고 그 영향력도 컸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삼성전자의 신제품보다는 경쟁사의 ‘롤리팝폰’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기 쉽다는 것이죠. 더구나 최근 ‘롤리팝2폰’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이같은 부분을 삼성전자가 몰랐을리는 만무합니다. 삼성전자는 ‘젊은 브랜드’를 구현하기 위해 2NE1을 선택했다는 설명입니다. 앞서 선보인 풀터치스크린폰 ‘코비’는 2PM이 모델로 나섰죠. 사실 삼성전자가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1020세대에서는 LG전자와 팬택이 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걸그룹 모델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번갈아 기용한 것은 2NE1이 처음은 아닙니다. 처음은 소녀시대입니다. 소녀시대가 아직 국민여동생이 되기 전인 2008년 6월 삼성전자는 소녀시대의 유리 티파니 제시카를 슬라이드폰 ‘소울’의 모델로 내세웠었습니다. 출시 기자간담회 때 이들이 와서 냈던 문제가 ‘소녀시대가 몇 명일까요?’였으니 얼마나 무명이었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사진 촬영시간도 있었는데 반응도 별로였습니다. 저는 이들이 직접 사인한 싱글 CD를 10장이나 받았는데 그냥 남들을 줘버렸죠(지금이라면 절대 그럴리 없겠지만ㅡㅡ;;). 소울폰은 당시 경쟁 상대였던 LG전자의 ‘시크릿폰’을 제치고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소녀시대도 훨씬 유명해졌죠. 2NE1으로 성공을 한 LG전자가 소녀시대를 영입한 것은 작년 9월입니다. ‘롤리팝’처럼 소녀시대가 부른 ‘초콜릿’도 큰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이들이 메인 모델로 나선 ‘뉴초콜릿폰’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뉴초콜릿폰’은 ‘스마트폰’ 열풍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LG전자의 휴대폰 모델로 장수하고 있는 배우 김태희도 상황은 다르지만 본의 아니게 경쟁제품의 간판으로 등장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동시에요. 2008년 초였는데요. 당시 김태희씨는 디지털카메라 업체 올림푸스의 모델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LG전자가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노린 500만 화소 카메라폰을 내놓으면서 메시지가 겹쳐버렸습니다. 디지털카메라 모델이 디지털카메라가 필요 없는 휴대폰 광고를 하는 셈이 됐죠. LG전자의 후광효과가 더 컸던 탓에 올림푸스는 그 시기 김태희씨를 기용한 광고를 중단했었습니다. 물론 광고시장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모델을 썼을때 경쟁사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마찬가지로 먼저 그 모델을 채용했던 기업은 후발주자가 큰 이득을 보지 않길 바랄테고요. 삼성전자가 2NE1을 통해 젊은층에게 ‘롤리팝’의 그늘을 걷어내고 ‘코비’의 이미지를 씌울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롤리팝2’의 판매를 도와주는 상황이 벌어질까요. 결과는 3월이면 알 수 있겠지요. ‘코비F’와 ‘롤리팝2’의 판매 대결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댓글 쓰기

광고로 본 이동통신사들의 치열한 경쟁의 역사

채수웅 기자의 방송통신세상 09.10.26 09:19

통신사들의 광고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광고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통사들의 광고를 보면, 당시의 서비스 트렌드, 경쟁상황, 정부 정책 등이 녹아있습니다. 산업적인 측면이외에도 이통사들의 광고에는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힘이되는 광고들도 많습니다. 모 기업의 광고처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내용의 광고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최근의 KTF의 쇼는 톡톡튀는 유머로 많이 회자가 됐습니다.  반면, 어떤 광고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속내를 약간 아는 기자 입장에서 보면 속이 뻔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측면에서는 "이제와서 염치도 참 좋다"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시대별로 큰 정책적 변화가 있을 때 등을 기점으로 이통3사의 광고를 분석해보려 합니다. 주제는 '경쟁' 입니다. 이통사들의 광고를 통해 당시의 경쟁상황과 현재의 경쟁구도를 광고를 통해 조명해볼 생각입니다. 크게는 ▲96년 CDMA 상용화 시점부터 97년 PCS 사업자의 등장에 따른 셀룰러와 PCS 진영간의 대결 ▲그리고 인수합병을 통해 3개 사업자로 재편된 이후 2004년 번호이동성제도 시행으로 인한 사업자간의 뺏고빼앗기기 경쟁 ▲3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경쟁 등으로 구분할 생각입니다. 터지면 모든 것이 용서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동통신 서비스가 처음 상용화된 시점은 1984년이지만 본격적인 태동을 알렸던 시기는 CDMA가 처음 상용화됐던 1996년입니다. 이 전만해도 이동전화 서비스에 대한 TV 광고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경쟁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이동통신(현재 SK텔레콤)이라는 회사만 존재하다가 신세기통신이라는 제 2사업자가 등장하면서 이동통신시장은 드디어 경쟁모드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SK텔레콤은 탤런트 채시라씨를 모델로 한 본격적인 의미의 TV 광고를 론칭하면서 '디지털 011'이라는 브랜드가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됩니다.  탤런트 채시라씨와 권용운씨가 콤비를 이뤄 방영됐던 '디지털011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광고는 말 그대로 빵빵 터진다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두 형사가 살금살금 범인을 잡으려 침투하고 있는데, 잠자는 사자 깨우지 않고 살금살금 걷고 있는데 이놈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휴대폰때문에 곤경에 빠진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전국방방곡곡, 독도에서도 휴대폰이 터지는 지금에서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10여년전에는 정말 통화가 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삼성전자도 한국지형에 강하다는 콘셉으로 광고를 했었지요. 여튼 이때까지만 해도 이동통신 시장은 011 천하였습니다. 하지만 1997년, 한국통신프리텔, 한솔PCS, LG텔레콤 등 PCS 3사가 등장하면서 이통시장은 5개 서비스사가 경쟁하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합니다. 전체적으로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이통사 경쟁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SK텔레콤대 나머지로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016, 018, 019 등 PCS 진영은 광고도 공동으로 하면서 PCS간의 경쟁이 아닌 PCS 파이 넓히기에 주력하게 됩니다. 이후 한솔PCS는 '원샷 018'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기존 이통서비스 011과의 차별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광고전략을 폈습니다. KTF는 100년 전통의 KT 계열사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LG텔레콤은 감성에 소구하는 광고전략을 통해 SK텔레콤에 맞불을 놓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당시에는 신문사도 이통사들간의 경쟁 덕을 톡톡히 본 것 같습니다. 사업자 당 월 수십억원의 광고비를 집행했다고 하니까요. 공통점이 있다면 초기 PCS 3사는 SK텔레콤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 연합전선을 형성해 대항했다는 겁니다. 고성능, 저가, 초소형 단말기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공동마케팅을 전개했습니다. 이 때 SK텔레콤이 선보인 브랜드가 바로 오랜기간 SK텔레콤의 대표 브랜드로 활약한 '스피드011'입니다. '스피드011'은 97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7년간 SK텔레콤의 메인브랜드로 활약하게됩니다. 그렇게 '스피드 011' '파워디지털 017', '원샷 018', '사랑의 019' 등으로 브랜드 경쟁을 하던 이동통신사들은 90년대 말부터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전쟁을 시작합니다. 2000년까지만 해도 SK텔레콤은 TTL, KTF는 NA, LG텔레콤은 카이 등 20대를 겨냥한 서비스 경쟁을 비롯해 본격적으로 10대를 겨냥한 마케팅에 돌입하게 됩니다. SK텔레콤은 팅(Ting), KTF는 비기(BiGi), LG텔레콤은 카이홀맨이란 이름의 전용브랜드를 내놓습니다. 왜 이통사들은 10대에 주목했을까요? 어차피 학생들은 경제적 능력도 되지 않아 ARPU(가입자당 매출)도 얼마 되지 않았을텐데요.  여담으로 학생들이 자기 용돈으로 처음 구매하는 IT기기가 MP3 플레이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가 MP3 사업에 뛰어들었을때 중소기업 영역에 대기업이 뛰어드는 것에 곱지않은 시선도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직원이 그러더군요. 10대때 삼성 MP3를 사용하는 학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애니콜, 파브 등의 고객으로 이어진다고...이통사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10대를 잡아야 한다는 전략이 있었고 휴대폰이 특정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국민의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를 잡는 시점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TTL 광고의 경우 상당히 센세이셔널을 일으켰습니다. 한번도 본 적없는 모델인 임은경씨가 나와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화면으로 나중에 TTL SK라는 카피만 화면에 떴습니다. 일종의 티저광고로 TTL이라는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강하게 인식시킨 것으로 평가됩니다. 비기 광고에는 국민여동생 문근영씨가 나와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LG텔레콤은 카이홀맨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웠습니다. 캐릭터 자체로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만 통신사의 이미지 높이는데는 얼마나 기여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통신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2001년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합병합니다. SK텔레콤이 경쟁력의 근본인 800MHz 주파수를 독점하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여튼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면서 정부의 시장규제를 받게 됩니다. 당시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 인수로 시장점유율이 57%에 달했고, 당시 정통부는 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추는 조건으로 인수를 허용합니다. 때문에 SK텔레콤은 이동전화 사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 가입자를 받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광고에 영업적인 메시지도 담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디마케팅(De-Marketing)의 일환으로 등장한 광고가 그 유명한 '꼭 011이 아니어도 좋습니다'입니다. 당시 국민배우던 한석규씨를 모델로 '노란리본', '새출발', '등나무' 편 등이 방송됐었습니다. 속사정을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이 봤을때는 역시 1위 사업자니까 저런 여유도 부리는 구나 했겠죠. 당시 SK텔레콤은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겠지만 그 같은 광고를 통해 SK텔레콤의 이미지는 한결 산뜻해졌고, 불량(?)가입자도 솎아내는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편은 이동통신 경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번호이동성제도가 시행되는 시점인 2004년 즈음부터 시작합니다. 010이 등장하고 사업자별로 치열한 가입자 쟁탈전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상대방을 직접 겨냥한 광고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댓글 쓰기

광고로 보는 이통사 경쟁의 역사 두번째 이야기

채수웅 기자의 방송통신세상 09.10.27 14:38

광고로 보는 이동통신사 경쟁의 역사 두번째 편입니다. 첫 편에서는 선발 사업자인 SK텔레콤과 이동통신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PCS 사업자들의간 경쟁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신세기통신이 SK텔레콤으로, 한솔PCS가 한국통신프리텔로 합병되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지금과 같은 3강 구도로 재편됩니다. 2004년 번호이동성제도 및 010 식별번호 도입 시행은 이통3사의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발점입니다. 이통사들의 광고전도 다시 한번 불을 뿜게되죠. 흔히 자기번호를 유지하면서 이통사를 옮기는 것을 MNP(Mobile Number Portability)라고 하는데요. 지난해 3월27일 보조금 규제가 폐지되면서 번호이동 시장의 과열경쟁 양상이 지속되자 규제기관인 방통위 최시중 위원장이 나서 "보조금 그만쓰고 요금인하로 돌려라"는 요구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이동통신 요금 인하와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데 결과적으로 MNP가 요금인하를 저해하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보조금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만, 풀터치폰 등 고가의 휴대폰을 저렴하게 사용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어설픈 요금인하보다 소비자 편익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단말기 산업 경쟁력도 한단계 상승시켰구요. 물론, 폰테크, 메뚜기족 등 부작용은 막아야 겠지요. 여튼, 번호이동성 제도와 함께 '국민번호 010'(당시 광고는 이러했습니다)이 등장합니다. 현재 010 가입자 비중은 76%로 내년 초에는 80%에 이를 전망입니다. 정부는 2004년부터 일관되게 80%선에 이르면 강제통합에 대한 정책방향을 잡겠다고 얘기해왔기 때문에 010통합 정책도 슬슬 흘러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번호이동성제도와 010의 등장은 SK텔레콤에게는 불리한 제도였습니다. 스피드011의 브랜드가 경쟁사 브랜드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010 이라는 새 식별번호는 011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번호이동은 시기를 좀 나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번호이동제도가 사업자별로 순차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인데요, 제 1시기로 볼 수 있는 2003년 11월부터 2004년 6월까지는 SK텔레콤 이용자가 KTF 및 LG텔레콤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반면, 반대의 경우는 허용이 안됐던 시기입니다. 때문에 KTF와 LG텔레콤은 SK텔레콤 가입자를 겨냥한 광고를 쏟아낸반면, SK텔레콤은 방어에 치중했던 시기입니다. 먼저 후발사업자들의 광고를 볼까요. 2003년 말 KTF는 '굿타임 찬스'라는 광고를 통해 "흥분하라! 기회가 온다!"라는 문구를 통해 번호이동을 암시하는 광고를 내보냅니다. 011을 형상화한 농구공과 유니폼 번호, 스테이크와 새우의 배열이 기가막힙니다. KTF는 SK텔레콤을 요금도 비싸고 경쟁사의 뛰어난 품질과 서비스에 변명에만 급급한 사업자로 전락시킵니다. 아무리 고민하고 따져봐도 미련없이 KTF로 바꾸는 것이 득이라고 강조합니다.  LG텔레콤도 011을 직접 겨냥합니다. 얼핏보면 SK텔레콤 광고로 보일 정도로 011로 도배가 돼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LG텔레콤의 011입니다. 번호이동을 통해 '새로운 011로 바꾸세요'라는 광고는 말 그대로 SK텔레콤 011은 요금도 비싸고, 상식도 통하지 않고, 할인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서비스가 되버립니다. 이 광고에 발끈한 SK텔레콤은 LG텔레콤을 상대로 광고행위 금지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습니다. 위의 광고는 2004년 시절은 아닙니다만, 모델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배우 한석규씨와 김주혁씨의 동행 시리즈입니다. 1편에서 봤듯이 한석규씨는 SK텔레콤의 간판 모델이었습니다. LG텔레콤은 한석규씨를 출연시켜 번호이동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번호이동성제도가 시행된지 10일 만에 011 고객 12만6천여명이 KTF와 LG텔레콤으로 옮깁니다. 후발사업자들은 대한민국 이동통신 시장이 변하고 있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죠. 하지만 SK텔레콤도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죠. 당시 SK텔레콤이 전국 대리점에 '가짜 011고객이 진짜 011로 돌아오고 있다'는 문구를 삽입한 포스터를 뿌리고, 품질이 다르다는 내용을 강조한 광고를 통해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습니다. 번호이동성제도가 시행된 2004년을 전후해서는 이통사간 비방광고, 통신위 제소가 잇달아 나오면서 과열경쟁 양상을 빚기도 했습니다. 광고에서 보듯이 SK텔레콤은 KTF와 LG텔레콤의 약정할인, 전환가입자 우대조건 제공 등을 통신위에 제소했습니다. 공정위에도 상식이 통하는 011 광고 등을 문제 삼았습니다. 반대로 KTF도 SK텔레콤을 상대로 SK텔레콤의 번호이동자에 대한  역마케팅, 통화품질실명제, 바나나 광고 등을, LG텔레콤은 SK텔레콤의 체납요금 수납거부 행위 등을 통신위와 공정위에 제소하는 등 SK텔레콤과 후발사업자간의 갈등은 도를 넘어섭니다.  이후 SK텔레콤도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섭니다. 2004년 7월부터는 KTF에서 SK텔레콤과 LG텔레콤으로 번호이동이 허용됩니다. 이통사간 가입자 유치경쟁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시점입니다. 그동안 방어에만 나섰던 SK텔레콤도 고객유치전략으로 선회합니다. 번호는 이동할 수 있어도 품질과 자부심만은 이동할 수 없다는 바나나, 엘리베이터, 당신의 일부이기에 편 같은 브랜드 파워를 담은 광고와 약정할인, 자동로밍, 레인보우데이 등 SK텔레콤이 우위에 있는 상품들을 담은 광고들이 온에어되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SK텔레콤은 스피드011의 브랜드 파워를 010까지 전이 시키는 시도를 합니다. 스피드 010의 등장입니다. 같은 010 이어도 급이 다르다는 거지요. 이와 함께 KTF 가입자 유치를 위해 '당신의 마음속의 SK텔레콤'편과 '끌리면 오라'라는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양방향 번호이동시장에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LG텔레콤의 고객들도 타사로 이동할 수 있는 번호이동성의 완전개방이 이뤄지는 2005년부터는 말 그대로 뺏고 뺏기는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결국 SK텔레콤의 대표 브랜드 스피드 011은 010 통합번호시대와 번호이동성제도로 인해 경쟁력이 점차 퇴색합니다. 이후 이동통신사의 경쟁구도는 011, 016, 019 등 식별번호가 아닌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회사명칭의 브랜드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다시 대표 서비스로 브랜드가 바뀌게 되지요. 지금의 'T', 'SHOW', 'OZ' 등으로 말입니다. 다음편은 식별번호 시대를 접고 새로운 통신시장이 열리는 3세대 이동통신편을 다룰 예정입니다.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하고 3G 이동통신을 알리기 위한 이통사들의 경쟁모습을 그릴 예정입니다. 특히, 2세대 시장에서는 011 브랜드를 극복하지 못한 KTF의 쇼 브랜드 전략과 이에 대응하는 SK텔레콤의 'T'와 함께 WCDMA에서는 제외된 LG텔레콤의 무선데이터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기획시리즈에 사용되는 광고 이미지는 이통사 제공 및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댓글 쓰기

광고로 보는 이통사 경쟁의 역사 마지막 이야기

채수웅 기자의 방송통신세상 09.11.05 14:02

2004년 이후 KTF와 LG텔레콤은 외연 확대에, SK텔레콤은 점유율 유지에 주력하게 됩니다. 하지만 번호이동정책 시행이후 후발사업자가 간간히 요금제와 서비스를 통해 선발사업자를 공략하지만 의미 있는 경쟁은 미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다가 2006년 5월, 이동통신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발하는 계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HSDPA의 상용화 입니다. SK텔레콤이 2006년 5월 세계 최초로 HSDPA 상용서비스를 시작하고 KTF 역시 6월말 상용화를 단행합니다. 바야흐로 이동통신 시장이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의미있는 경쟁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2007년 3월 1일 KTF는 3세대 서비스 브랜드인 쇼(SHOW)를 정식으로 론칭합니다. 당시 조영주 KTF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3월 1일은 1896년 우리나라에 자석식 전화기가 처음 도입된 이후 110여년간 지속된 듣고 말하는 음성시대가 막을 내리고 전국 어디에서나 보고 즐기는 영상시대가 열리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날자도 3월1일입니다. 3G 시장에서 경쟁을 얘기함에 있어 SHOW의 비중은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KTF는 창립이래 처음 적자를 기록하면서까지 3G에 올인했으니까요.  KTF는 SHOW를 론칭하면서 KTF라는 회사 이름은 철저하게 숨깁니다. 왜냐면 업계 2위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에 SHOW 광고에서는 회사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만년 2위에서 1위 사업자로 도약하고 싶은 KTF는 SK텔레콤을 2G에서 3G로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는데 SHOW 브랜드 열풍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KTF는 SHOW 론칭 이후 지금 KT와 합병한 이후까지 '쇼를 하라', '쇼킹스폰서', '쇼때문이다' 등 정말 징그럽게 SHOW를 우려먹습니다. 그 결과 정말 소비자 뇌리에는 KTF가 아닌 SHOW가 자리를 잡게됩니다. 이 같은 KTF의 SHOW 올인전략에 SK텔레콤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SHOW 탄생의 비화를 들려드리자면, 2006년 9월 초 KTF의 임원회의에서 KTF의 3세대 이동통신 브랜드 최종 후보 5개가 올라옵니다. 바로 ‘W(더블유), SHOW(쇼), Vyond(비욘드), WHAT?(왓?), Wing(윙)’. 무려 3천개의 후보에서 6개월간의 선정작업 끝에 올라온 브랜드들 입니다. ‘W’는 3.5세대 이동통신 방식인 WCDMA(광대역 코드분할 다중접속)를 의미하고, ‘SHOW’는 나를 보여주면서 통화하는 영상통화를 뜻합니다. ‘Vyond’는 visual(눈에 보이는)과 beyond(무언가를 넘어서)의 합성어, ‘WHAT?’은 궁금증과 놀라움의 표시, ‘Wing’은 ‘WCDMA를 하고 있는(ing)’이라는 의미와 날개의 뜻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KTF는 최종 후보를 선정하기 위해 시장조사 등 다방면에서 조사를 진행한 결과 W가 1위로 나옵니다. SHOW의 경우 왠지 가짜, 비꼬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SHOW가 얼굴을 보면서 통화한다는 3G 특성을 반영하고 소비자 감성을 쉽게 파고들 수 있다는 판단하에 결국 KTF의 3G 브랜드는 SHOW로 최종 결정됩니다. SHOW론칭 이후 1년여간은 3G의 대표적 서비스인 영상통화를 강조하는 광고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SHOW 광고는 무수히 많죠. 서단비씨가 SHOW 광고 덕에 깜짝스타가 되기도 했죠. SK텔레콤은 가급적 3G로 늦게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때문에 초창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SHOW는 파죽지세로 가입자를 모집하게 됩니다. 하지만 SK텔레콤도 3G 시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시장에 안착되자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SK텔레콤도 WCDMA의 등장으로 2006년 7월 새로운 브랜드인 'T'를 선보입니다. ‘T’ 의 의미로는 ‘통신업계(Telecom) 최고의 기술(Technology)로 고객에게 최고(Top)로 신뢰(Trust)받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SK텔레콤도 3G 주요 서비스 중 하나인 영상통화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사실 영상통화가 3G의 킬러서비스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KTF와 SK텔레콤은 1년 이상 영상통화에 올인했지만 영상통화 자체는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영상통화에서 무선인터넷으로 이동한 상황입니다. KTF에 SHOW 시리즈가 있었다면 SK텔레콤은 완전정복 시리즈를 통해 영상통화 광고를 쏟아냅니다. 시험기간 완전정복, 부부싸움 완전정복, 박태환 완전정복, 추석필살기편, 얼짱각도편, 화면조정편, 특수효과편, 위기대처편 등 그야말로 영상통화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이후 SK텔레콤은 2008년 3월부터는 '생각대로 T' 캠페인을 시작하는 등 T 마케팅을 이어갑니다. 생각대로 T 캠페인은 '생각대로 하면 되고~' 등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3G를 이야기하다보니 LG텔레콤은 빠졌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LG텔레콤은 동기식 IMT2000 사업을 포기하면서 당시 남용 사장이 퇴진하는 사태에 까지 이르게됩니다. 결국, LG텔레콤은 2007년 9월부터 동기식 3G 기술인 리비전A를 서비스하게 됩니다. 리비전A는 기존 2G망을 업그레이드 한 것으로 경쟁사들의 3G망처럼 완전히 차별화되지 않습니다. 유심(USIM) 기반의 부가서비스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세계 주요 통신사들이 GSM 계열에서 발전한 WCDMA를 사용하기 때문에 글로벌 자동로밍, 단말 선택 등에서도 제약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LG텔레콤은 영상통화나 USIM 기반의 서비스가 아닌 요금, 부가서비스 광고에 올인합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기분ZONE 광고 입니다. LG텔레콤은 SK텔레콤과 KTF가 3G 시장에서 영상통화로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기분ZONE 광고를 통해 사용하지도 않는 영상통화보다는 요금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보조금을 팍팍 주는 LG텔레콤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2006년 부터 시작된 기분존은 한 동안 계속됩니다. 집전화 가출편, 밀항편, 수다편 등 1년 정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3G 가입자가 계속 늘어나니 LG텔레콤으로서도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그 때 LG텔레콤의 승부수는 무선인터넷이었습니다. 쓰지도 않는 영상통화는 집어치우고 저렴한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라며 월 6천원에 1GB를 제공하는 OZ를 선보입니다. LG텔레콤은 3G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며 영상통화는 잘 쓰지도 않고, 콘텐츠도 엉성하고 비싼 요금을 받는 것이 3G 서비스라고 주장합니다. 틀린말은 아닙니다. 2G에서 3G로 세대가 바뀌었는데 큰 차별점은 여전히 느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즈 광고가 먹혀서일까요. 아니면 영상통화의 한계가 찾아온 것일까요. 지난해 LG텔레콤이 오즈를 출시한 이후 최근 이동통신 시장의 최대 화두는 무선인터넷입니다. 오즈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SK텔레콤과 KTF도 데이터요금과 정보이용료를 공짜로 제공하는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특히, KTF를 합병한 통합 KT는 무선데이터 시장 활성화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SK텔레콤 정만원 사장이 KT의 홈FMC에 대해 "질적 서비스가 아니다"라며 일침을 날렸지만 2위 사업자에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든 1위자리에 올라서려는 노력은 높게 평가할 만 합니다. 앞으로 보조금을 통한 가입자 유치전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당분간 이통3사의 경쟁은 무선인터넷 시장에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KT가 QOOK&SHOW로 올레를 외칠수 있을까요? 아니면 SK텔레콤의 생각대로 될지, LG텔레콤이 다시 한번 마법을 부릴 수 있을지, 향후 이통사 경쟁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전망입니다. <이번 기획시리즈에 사용되는 광고 이미지는 이통사 제공 및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댓글 쓰기

TV광고로 본 포털사이트 경쟁사

심재석의 소프트웨어 & 이노베이션 10.01.15 16:58

혹시 통신정책 및 통신시장을 취재하는 디지털데일리 채수웅 기자가 포스팅 했던 ‘광고로 본 이동통신사들의 치열한 경쟁의 역사’라는 글을 보셨나요? 저도 이 아이디어를 본 따 ‘광고로 본 한국 포털 사이트의 치열한 경쟁의 역사’를 정리해 볼까 합니다. 광고를 통해 각 업체들은 어떤 전략을 취했었고, 누가 성공하며 누가 실패했는지 한 눈에 보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포털사이트들의 광고 경쟁은 1999년부터 시작됐습니다. 1999년은 엠파스와 네이버가 등장한 해 입니다. 1997년 설립돼 한메일 서비스로 인기를 끈 다음은 1999년 카페 서비스의 첫 선을 보였습니다. 1999년 이전에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야후코리아의 독주가 이어지던 시절이어서 광고경쟁은 별로 없었습니다. 엠파스는 ‘야후에서 못 찾으면 엠파스’라는 노골적인 광고카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눈먼 토끼와 눈 토끼가 등장하죠. 눈먼 토끼는 야후이고, 눈 큰 토끼는 엠파스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1999년만해도 포털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잘 몰랐던듯 합니다. 서비스의 경쟁력을 내세우는 대신 ‘우리 인터넷’이라는 다소 뜬구름잡는 카피를 내세웁니다. 2000년부터 정신을 차린(?) 다음은 본격적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광고에서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딴 데 왜 가? 다음에서 만나자"라는 카피를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죠. 커뮤니티 서비스에 대한 홍보입니다. 국내업체들의 전방위적 도전에 야후도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일까요? 2000년 들어 야후코리아도 TV광고 전선에 뛰어듭니다. 야후는 '야후! 쇼핑'을 내세워 경쟁자들을 물리치려 했습니다. 선도 업체들이 부가 서비스에 대한 광고를 강화하기 시작했을 때 네이버는 '검색'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해도 검색은 '돈 안되는 서비스'에 불과했었지만, 네이버는 자신있게 검색성능을 자랑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주제의 CF가 대표적이 사례입니다. 광고속에서 결혼 4개월 된 여성이 남편에게 "사랑이 뭔지 알아?"라고 물으니 남성은 아무 말도 못 합니다. 이후 여성은 "그가 아무 말도 못했을 때 네이버는 13만6808건이란다"고 독백합니다. 2000년이 지나고 IT버블 붕괴와 함께 포털업체들의 TV광고도 사라졌습니다. 2001년, 2002년은 광고가 아닌 생존이 필요한 시기였죠. 투자가 끊긴 수 많은 IT업체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광고비에 돈을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야후, 다음의 뒤를 따라오던 네이버가 피치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전 해 지식iN 서비스를 선보인 네이버는 그 해부터 대대적인 광고활동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네이버의 대표적인 광고모델로는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배우 전지현씨가 가장 먼저 생각나실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iN 광고모델은 전씨가 아니었습니다. 현재는 KBS에서 연예가 중계의 MC를 맡고 있는 이윤지씨가 지식iN의 대표적 광고모델이죠. 이후에는 가수 이켠씨, 배우 한가인, 봉태규 씨 등도 지식iN의 광고모델을 했었습니다. 이 때부터 "검색창에 ~~만 쳐봐" "네이버에 물어봐" 등의 말이 유행어처럼 퍼지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네이버는 이 때부터 검색분야의 부동의 1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메일, 커뮤니티 등의 서비스는 다음이 앞서고 있었지만, 그 분야는 이용자를 매출로 연결시키기 힘든 영역이었습니다. 결국 포털 서비스의 핵심은 검색이라는 네이버의 생각이 맞았던 것입니다. 검색을 무기로 한 네이버의 성장을 지켜본 다음도 2003년에 '검색서비스'를 광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 임창정씨, 최정원씨가 출연한 고래뱃속 광고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 때만해도 다음의 검색 성능이 지금보다 많이 떨어지던 때입니다. 아무리 광고를 잘 한다해도 이용자들의 검색 만족도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검색은 네이버'라는 인식이 굳어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카테고리 검색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인터넷을 호령해온 야후코리아도 가만히 있을 순 없겠죠? 야후도 2003년 검색서비스 광고전쟁에 뛰어듭니다. 야후 검색이 너무 뛰어나 앞으로 강의 시간에 질문하는 사람은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내요의 광고입니다. 하지만 야후의 광고도 인상적이기 했지만 이용자들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야후는 이후 '거기' 서비스가 등장할 때까지 침묵을 지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두편으로 나눠야 겠습니다. 다음 편은 네이버의 독주가 시작된 2004년부터 최근까지의 광고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덧) 현재 네이트의 전신인 '라이코스'라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잘햇어~ 라이코스'라는 광고 카피가 인상적이었던 회사입니다. 라이코스는 2002년 SK컴즈에 합병됐습니다. 댓글 쓰기

광고로 보는 인터넷 포털의 역사 두번째 이야기

심재석의 소프트웨어 & 이노베이션 10.01.15 16:58

TV 광고로 보는 인터넷 포털 경쟁의 역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첫 편에서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의 광고를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의 광고를 보겠습니다. 2004년은 드디어 네이버 광고에 전지현씨가 등장합니다. 2003년말 네이버가 다음 카페를 모방한 카페iN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전씨를 광고모델로 내세운 것입니다. 카피는 '상상도 못 했지 새 카페가 생길 줄...'입니다 . 커뮤니티 서비스 시장을 독식하고 있던 다음 카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네이버와 다음은 '카페'라는 명칭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다음측이 '카페'라는 단어에 대해 자사의 브랜드 이름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카페'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칭하는 일반명사가 인식되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iN 광고는 지금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광고지만, 네이버하면 전지현이 떠오를 정도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습니다. 전지현씨를 이용한 광고가 인기를 끌자, 네이버는 전씨를 네이버의 대표 모델로 삼습니다. 2004년에 만들어진 모든 광고에 전씨가 등장합니다. 전지현을 앞세운 네이버의 파상공세에 맞대응하는 다음의 광고는 좀 싱거운 편입니다. 이같은 광고들이 큰 효과가 없자 다음은 '당신이 DAUM의 주인공'이라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캠페인 웹페이지가 아직도 남아있군요. 네이버는 철저히 지식iN, 카페iN, 블로그 등 자신들의 서비스를 소개하는 광고를 진행한 반면, 다음은 다소 뜬구름 잡는 광고로 접근한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때부터 네이버는 다음을 큰 격차로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네이버의 지식iN, 다음의 카페 때문에 3위 사업자로 내려앉은 야후코리아는 2004년 '거기'라는 서비스를 통해 도약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거기 서비스는 인기를 끌었지만, 야후의 검색 점유율은 점점 줄어들었고, 2004년 이후 야후의 TV광고는 사라졌습니다. 2005네이버가 다양한 광고를 쏟아낸 시기 입니다. 물론 광고의 중심은 검색입니다. "~~가 궁금하면 네이버 검색창에 ㅇㅇㅇ만 쳐보세요"를 주제로 약 30여 종의 네이버 광고가 등장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배우 김태희의 쉘위댄스편이 기억이 나는군요. 저도 맨날 "쉘위댄스~ 나나나나나나"를 흥얼거렸거든요 그런데 이 광고는 원래 네이버 광고가 아닙니다. 아이리버 딕플 광고를 네이버가 이용한 것입니다. 네이버에 업계 주도권을 빼앗긴 다음은 '플래닛'이라는 브랜드로 전세역전의 꿈을 꿉니다. 플래닛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차용한 서비스였습니다만, 실패한 서비스로 역사에 남게 됐군요. 한편 엠파스는 2000년 등장한 직후 큰 인기를 끌었지만, 검색 시장을 네이버가 독식하면서 점점 초라해졌습니다. 2005년 점점 작아지던 엠파스는 야심작으로 '열린 검색'을 내 놓았습니다. 엠파스에서 검색하면 네이버,다음, 등 다른 포털의 검색결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이 이 서비스의 특징입니다. 열린검색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위기를 맞았던 엠파스가 열린 검색을 통해 새로 도약하는 듯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네이버 등이 자사가 공들여 쌓은 DB를 엠파스가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면서 열린검색의 인기도 시들해졌습니다. 2006년부터는 다음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웹2.0 열풍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UCC(손수제작물) 동영상 시장에 다음이 강력하게 어필하기 시작합니다. 네이버는 2005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이전까지 다만 "검색창에 ~~만 쳐보세요"라고 말하던 네이버가 이제는 "~~를 검색해 보셨군요?"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검색=네이버"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어주던 광고 시리즈였던 것 같습니다. 2006년 UCC 시리즈 광고로 인기를 끈 다음은 2007년에도 UCC에 대한 강세를 이러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UCC 검색'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내 놓기도 했습니다. "일반 검색하면 ㅇㅇㅇ나온다. UCC 검색하면 ㅇㅇㅇ이 나온다."라는 카피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반면 네이버는 '세상은 자란다'는 다소 뜬금없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캠페인을 펼칩니다. 2008년은 포털 업계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라는 확고한 3강체계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네이트는 인터넷 포털이라는 느낌보다는 SK텔레콤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명으로 인식됐습니다. 광고도 무선인터넷에 대한 것이 대다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수 비와 이나영의 광고 드라마였죠.  네이버는 2008년에 새로움 홈페이지 개편하했고, 다음은 UCC 검색을 3년째 이어갔습니다. 광고로만 보자면 2009년은 네이트의 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를 글로 배웠습니다' '시맨틱 검색' '뉴네이트' 등 다양한 광고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포털업체들은 2010년에는 어떤 주제로 광고를 할까요? 섣부른 예측입니다만 네이트는 시맨틱을 계속 강조할 것으로 보이고, 다음과 네이버는 모바일 쪽을 광고하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