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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LGU+ 갈등에서 드러난 통신사-제조사 역학관계 ‘속살’

통신이야기 14.04.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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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과 LG유플러스의 ‘베가시크릿업’ 출고가 인하를 둘러싼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LG유플러스가 ‘LG유플러스, 팬택 살리기 나섰다’라는 보도자료가 시발점이었다. 95만4800원의 베가시크릿업을 35만5300원을 깎은 59만9500원에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경우 방송통신위원회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지키면 베가시크릿업의 실구매가는 22만9500원까지 떨어진다. 발표 직후 베가시크릿업의 판매량은 평소의 8배까지 늘었었다.

그러나 팬택이 23일 출고가 인하는 LG유플러스가 일방적으로 한 것이며 협상은 결렬됐다고 밝히며 일이 커졌다. LG유플러스는 경쟁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SK텔레콤 KT는 부인했고 팬택은 입을 닫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되면 LG유플러스는 대놓고 정부의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어긴 범법자가 된다.

출발만 보면 LG유플러스가 팬택을 도와주려 한 것인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을까. 이번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신사와 제조사 그리고 휴대폰 유통구조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통신사와 제조사의 관계에서 통신사가 ‘갑’ 제조사가 ‘을’이라 지칭하는 것은 양사의 역학관계 탓이다.

제조사의 매출처는 휴대폰 사용자가 아닌 통신사다. 통신사라는 유통망이 없으면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휴대폰은 단품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이동통신을 가입해야만 쓸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유통망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팔리지 않는다. 통신사가 대표로 내세우는 제품은 가입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는 단말기면 된다. 제품의 좋고 나쁨은 문제가 아니다.

휴대폰 제조사의 매출은 대부분 제품이 통신사로 넘어갈 때 발생한다. 통신사는 판매 상황을 고려해 수급을 조절한다. 잘 팔리면 문제가 없지만 잘 팔리지 않으면 더 이상 물건을 받지 않거나 가격(출고가)을 내린다. 가격을 내릴 때는 통신사가 물건을 사 온 가격(공급가)과 차액(재고보상금)을 어떻게 부담해야 할지 협상한다. 통상 반반이다. 제조사에게 재고보상금은 신규 매출 없는 비용이다. 휴대폰 판매수명주기를 감안하면 비용이 아닌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제조사는 팔리던 안 팔리던 매출 발생한대로 끝인 것이 유리하다. 물론 이는 단기처방이다. 통신사와 거래는 오늘만 하고 끝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통신사와 협력해 재고를 치워야 신제품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통신사가 재고보상금을 다 감당하는 경우는 특수한 상황이다. HTC가 한국철수를 결정했을 때 같이 말이다. HTC는 2012년 한국을 떠나며 SK텔레콤 KT에 8만여대의 재고를 남겼다. SK텔레콤과 KT는 이를 처리하느라 상당한 손실을 감수했다.(관련기사: 재고·AS ‘나 몰라라’…HTC, 한국 철수 ‘먹튀’ 수순) HTC 사례는 통신사에게 경종을 울렸다.

다시 팬택과 LG유플러스의 협상 결렬로 돌아가 보자. 양사가 구두 합의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재고보상금이 존재하는 한 통신사의 일방 출고가 인하는 있을 수 없다. 제조사가 합의를 해주지 않으면 불법 보조금 문제 발생 이전에 불공정 거래가 된다. 미래창조과학부 및 방송통신위원회가 문제가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개입한다.

LG유플러스는 전통적으로 LG전자 제품을 전략 제품으로 밀었다. LG전자가 휴대폰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LG유플러스가 롱텀에볼루션(LTE) 시장서 잘나가면서 유대는 더 강해졌다. LG유플러스가 팔아준 LG전자 제품은 2012년 1조원을 돌파했다. LG전자 휴대폰 매출처 중 가장 크다.

통신사 사업정지는 LG전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G프로2 ▲뷰3 ▲GX 등의 상당량이 재고로 묶여있다. GX는 LG유플러스 전용이다. 팬택보다는 LG전자를 지원해야 하는 것이 LG유플러스의 기존 행동패턴이다.

팬택은 현재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이다. 단 오는 6월4일까지 시한부다. 5월초 실사 결과에 따라 지속여부가 갈린다. 워크아웃을 지속해야 매각이든 독자생존이든 가능하다. 워크아웃 종료는 사실상 청산이다. 팬택은 지난 1분기까지 7분기 연속 적자다. 워크아웃을 계속하려면 팬택의 기업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방법은 둘이다. 흑자 전환 또는 매출 확대다.

결렬은 어느 한 쪽의 잘못이라기보다 서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안이 달랐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LG유플러스는 재고에 팬택은 신규 매출에 무게를 뒀다.

워크아웃이 무산되면 LG유플러스가 갖고 있는 팬택 재고는 악성재고가 된다. 판 수량만큼 구매를 하겠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LG유플러스가 보유한 팬택 재고는 15만대. 이 중 베가시크릿업이 8만5000대다. 재고 처리에 협력을 하는데 일정 매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도 당연하다. 워크아웃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비용 증가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팬택은 장기적 거래를 위해 일시적 비용 증가를 감당할 자금 사정이 아니다. 5만대 구매 약속을 요청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팬택에게 신규 매출 발생 없이 재고보상금만 부담하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가격인하에 따른 재고부담금을 LG유플러스와 팬택이 절반씩 부담하면 각각 151억원의 비용이 생긴다. LG유플러스가 팬택 제품을 공급가 70만원에 5만대를 구매하면 350억원의 매출이 팬택에게 돌아온다.

이러니 LG유플러스 입장에서는 팬택이 재고 처리는 등한시한 채 공급량만 늘리는 것처럼 여겨지고 팬택 입장에서는 LG유플러스가 신규 매출은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비용만 부담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

협상 결렬과 LG유플러스의 불법 보조금 논란은 다른 문제다. 팬택이 아무리 판을 깼어도 LG유플러스는 중요한 거래처다. 이미 나간 출고가 인하를 무르기는 위험부담이 크다. LG유플러스도 분할 상환 등을 제안했다. 팔린 제품만 따져보면 팬택도 큰 부담은 아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다. 바로 SK텔레콤과 KT다.

양사는 재고부담금 논의 이전에 구매를 내밀었다. 팬택이 합의를 하지 않으면 LG유플러스는 불법 보조금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SK텔레콤과 KT는 충분히 이용해 볼 카드다. 팬택이 이들이 이런 주문을 했다고 밝히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팬택이 지난 24일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대응치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입장을 표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제조사와 통신사의 관계다. 통신사는 제조사에게 재고보상금의 일부를 덜어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 많지도 않은 물량을 사주며 제조사에게 거래처의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는 일을 주문한다. 이 틀은 비단 국내만 적용되는 사례는 아니다. 전 세계 통신사가 엇비슷하다. 전 세계 제조사 중 이 관계서 자유로운 곳은 애플뿐이다. 삼성전자는 갑 같은 을이다. 나머지는 팬택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