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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세탁기' 전쟁, 최후에 웃는 승자는?

통신방송 17.10.20 16:10

결국 '세탁기 전쟁'이 시작됐다. 19일(현지시각)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워싱턴D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앞서 ITC는 월풀의 청원을 받아들여 지난 5일(현지시각)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가 미국 산업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원인 또는 위협이라고 판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2월, 최종 조치를 확정할 계획이다. 

 

이 '세탁기 전쟁'에는 너무 많은 의미들이 쓸데없이 응축돼 있다. 본질과는 관계없는 의미들, 예를들면 일부 언론에선 '코리아 패싱'과 같은 어이없는 의미가 붙기도 한다. 국제통상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결과다.   

이런 싸움은 그 속성상 당사자들에게는 그 자체가 부담이다. '영광뿐인 상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기때문이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세탁기를 통해서라도 꼭 실증해 보이고 싶을 것이고, 미국 세탁기 제조업체 '월풀'은 어떤 식으로든 2위권인 삼성, LG전자의 추격을 따돌리고 싶을 것이다. 정황상, 어떤식으로든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는 발동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른다. 지금까지는 갑작스런 미국 ITC 세이프가드 검토 결정에 삼성, LG전자가 수세에 몰려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당황하는 쪽은 월풀이나 미국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이지만 미국이 쓸데없이 강력한 '세이프가드'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 세이프가드, 왜 무리수인가?


'세이프가드' 의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이프가드는 '긴급수입제한'조치다. 말그대로 외부로 부터 특정 목적의 수입을 차단시켜버리는 매우 강력한 보호무역수단이다. 

 

효과가 탁월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수단이 아니다. 주로 농산물이나 국가의 기간산업이 위협을 받을 때만  논의된다. 

 

즉, 세이프가드는 '특정 상품의 수입이 급증해서 기존 국내 산업이 붕괴에 위험에 처하거나 심각한 피해를 줄 경우'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발동되며. '심각한 위험'이 해소되거나 치유됐을 경우 지체없이 세이프가드 조치는 해제된다. 세이프가드 조치의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는 그에 상응하는 무역 보복을 발동시킬수도 있다. 

 

이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트럼트 행정부는 이번 '대용량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강행할 태세다. 결국 이번 미국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는 삼성전자, LG전자에게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미국내로 세탁기 생산기지를 옮기라'는 요구로 귀결된다.

 

'미국산 세탁기의 보호'? ....예봉을 피하기위한 유일한 선택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의 명분은 '미국산 세탁기 보호'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현실적으로 한가지 선택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스스로 '미국산 세탁기'를 만들면 된다.

 

관세법 등 통상법상 '원산지 규정'에 따라 삼성, LG전자가 미국내에서 세탁기를 제조하면된다. 물론 '미국산 세탁기'로 인정받기위해서는 부가가치 기준 등 디테일한 '원산지' 요건을 준수해야겠지만 이는 충족될 것으로 가정한다.

 

참고로 '원산지'와 '국적'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제조해서 수출하면 이는 '중국 제품'으로 정의된다. 현재 일각에서 이번 세이프가드와 관련해 '한국산 세탁기 수입 제동'과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일 뿐 특정 국가나 특정 기업을 별도로 지목하지는 않는다. 앞서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ITC가 공개한 '대용량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 내용에 '한국산',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표현은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도 이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때, 자국 기업 '월풀' 을 위협하는 세탁기는 엄밀히 말하면 '한국산 세탁기'가 아니라 삼성, LG전자가 현지에서 제조해 수출한 '태국산' 또는 '베트남 세탁기'이다. 이번 공청회에서 태국, 베트남 등 관련 국가들도 세이프가드 조치에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월풀'이 부메랑을 맞게 될 가능성 

세이프가드 조치를 피하기위해 삼성전자, LG전자가 미국내로 생산기지를 옮기게 된다면, 결국 월풀은 동일한 조건에서 삼성, LG전자와 새로운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미국의 최종 소비자들은 기존보다 비싸진 삼성, LG 세탁기를 구매해야한다.

월풀은 내심 '삼성, LG전자가 설마 미국내로 세탁기 공장을 옮길까'라고 낙관했을지 모른다. 

 

만약 월풀이 원가관리, 재고 및 물류관리, 품질관리, 제품 및 가격 경쟁력 등에서 삼성, LG전자를 압도하지 못한다면 향후 미국내 시장에서도 시장 역전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삼성, LG의 생산관리 체계(ERP) 수준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향후 삼성, LG전자가 세탁기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고, 현지 법인화한다면 그 이후부터 월풀이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다. 

오히려  삼성, LG전자가 미국에서 만드는 '미국산 세탁기'는 이제  월풀과 동일하게 미국의 세이프가드의 보호를 받게된다. 미국의 입장에선 이제 집안으로 불려들어 호랑이를 키우는 꼴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이 모든 상황은 월풀의 청원과 트럼프 행정부의 세이프가드 조치라는 무리수에서 시작됐다. 세이프가드가 아니라 '반덤핑 제소' 등 좀 더 소프트한 방식이었다면 생산기지 이전과 같은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론 삼성, LG전자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에서 월풀의 위협을 극복한다하더라도 고민의 깊이는 커질 수 밖에 없다. 

 

미국과 그 이외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생산라인을 다원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된 고가의 세탁기는 가격경쟁력때문에 미국 이외의 시장에서 팔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현재 다국적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고민이 그렇듯 물류비, 원가 구성 등을 고려할때 다원화된 생산 구조는 어쨌거나 관리의 문제점을 노출 시킬 수 있다. 

 

삼성, LG전자의 입장에서 볼때, 미국시장내에서의 세탁기 전쟁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차별화된 전장이 생겨날수록 그에 대응하는 비용도 동시에 증가한다. 

 

결국 삼성, LG전자는 기존과 차별화된 혁신적인 ERP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이 난관을 극복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완성하는 업체가 결국 2017년 가을에 촉발된 세탁기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이 전쟁의 결말이 몇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아무쪼록 삼성, LG전자에게 전환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