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시장에 백신(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 제품이 때 아닌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인용 무료백신 시장이 활짝 열리면서 국내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는 백신 제품이 더 많아지는 모습입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국산 백신 시장은 안철수연구소 ‘V3’, 하우리 ‘바이로봇’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SGA(옛 에스지어드밴텍)의 ‘바이러스체이서’ 정도만이 두드러진 공급 활동을 벌였습니다. 외산 백신의 경우엔 맥아피, 시만텍, 카스퍼스키, 트렌드마이크로가 전부였지요. 2년 전 NHN과 이스트소프트가 각각 개인용 무료백신 ‘네이버 백신(옛 네이버 PC그린)’과 ‘알약’을 출시해 단숨에 엄청난 사용자를 확보하며 큰 파장을 일으키더니, 갈수록 무료백신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V3’와 함께 초창기 출발한 에브리존 ‘터보백신’도 최근 ‘터보백신 프리’라는 무료백신을 출시했고, 앞서 마이크로소프트가 ‘MSE(마이크로소프트 시큐리티 에센셜)’을 지난달 공식 발표했습니다. 2일에는 SGA가 유료 제품인  ‘바이러스체이서’와 차별화된 ‘SGA24’라는 브랜드로 무료백신을 발표했습니다. 어베스트, AVG와 같은 외산 유명 무료백신들도 이미 국내 파트너나 지사를 통해 공급되고 있지요. 그런데 국내 업체들이 출시하는 백신 제품명을 나열하다보니 새삼스럽게 독특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안철수연구소 ‘V3’만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외산 백신엔진을 탑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네이버 백신’은 러시아 기반 카스퍼스키 엔진을 사용하고 있고, ‘알약’을 비롯해 ‘바이로봇’, ‘터보백신’은 모두 루마니아의 유명 백신인 ‘비트디펜더’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유료로 제공되는 잉카인터넷의 ‘엔프로텍트 안티바이러스’도 ‘비트디펜더’ 엔진을 사용하고 있지요. 러시아 백신 ‘닥터웹’ 엔진이 탑재돼 있던 ‘바이러스체이서’·‘SGA24’ 마저도 최근 들어 업데이트 등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비트디펜더’로 엔진을 바꿨습니다. 사실상 V3 이외에는 모든 국산 백신이 외산 엔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두 동유럽지역 기반의 백신 엔진들이군요. 여러 외국 업체들이 이같은 사업 방식으로 국내 시장 문을 두드렸던 점을 감안하면 NHN 경우만 빼면 비트디펜더의 완승입니다. 비트디펜더는 국내에서 엔진 공급 사업을 아주 잘하고 있군요. 외산이 시장점유율을 갖기 어려운 국내 보안 시장에서 특화된 사업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 직접 진출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지사를 둔 외국 백신업체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을 것으로 짐작해봅니다. 특별히 들어갈 제반 비용도 없고요. 국내 업체들의 입장에서 경험이 부족한 사업에 진출하려다 보면 자체 기술력 보다는 많은 노하우가 축적돼 있고 검증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쉬울 것입니다. 개발기간과 투자비용 등 자체 개발에 따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비트디펜더’는 지난 2007년 11월부터 2008년 9월까지 소비자시민모임이 국제소비자연구검사기구(ICRT) 회원 11개국 소비자단체와 공동으로 전세계 28개 인터넷 보안 제품을 대상으로 실시한 품질 평가에서 지데이타에 이어 두번째 순위에 오른 제품입니다. 작년에 진행된 바이러스블러틴(VB) 100% 테스트에서는 단 한번만 제외하고는 4번의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비트디펜더는 엔진사업을 벌이는 다른 백신업체보다는 기술지원이 체계화돼 있고 DB 양이 방대하면서 가격면에서도 꽤 경쟁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트디펜더’를 가장 먼저 채택한 국산 백신은 제가 알기로 ‘하우리’가 최초일겁니다. 2004년 말, 하우리는 국산 백신의 진단능력이 떨어진다는 등의 논란이 지적되던 당시에 과감히 기존 ‘바이로봇’ 엔진과 연동해 ‘비트디펜더’를 탑재해 듀얼엔진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해외 진출에 힘쓰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국내용(?) 바이러스 대응에만 특화된 엔진으로는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겁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국내에 주로 공급되는 백신들 대부분이 모두 ‘비트디펜더’ 엔진을 탑재하게 됐네요. 엔진 공급 사업으로 동유럽 외산 백신들이 국내 백신 시장에 침투한 게 한두 해에 불과한 것도 아니지만 ‘비트디펜더’가 이렇게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습니다. 국산 백신 대부분이 이미 ‘외산화된 국산 백신’이 됐다고 표현한다면 너무 과할까요? 요즘 대부분의 백신 제품이 자체 기술 개발에 주력하기 보다는 외국 업체인 기술을 활용해 좀 더 쉬운 길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두고 초창기 백신 개발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한 전문가는 “국내 백신 기술력이 약해진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냐”며, “국내업체들이 해외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 등 악성코드 샘플을 구하기 어렵고 정보력에도 취약해 외산 백신엔진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국내에 주로 공급되는 백신에 외산 백신엔진에 의존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시행 안철수연구소 상무도 “같은 엔진을 쓰더라도 (제품 기능이나 성능에서) 차별점은 있다”면서도 “넓은 의미에서 외산 엔진만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경쟁력이나 차별성도 없고 엔진만으로는 한계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백신업체들은 자사가 공급하는 백신이 ‘비트디펜더’ 엔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사가 개발한 자체 엔진과 함께 카스퍼스키·비트디펜더 엔진을 함께 탑재하는 듀얼(또는 그 이상)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스트소프트 알툴즈사업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정상원 이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웜이나 트로이목마를 비롯해 국내 악성코드는 자체 엔진인 테라(tera)엔진에서 주로 처리하고 있고, 비트디펜더 엔진도 오진이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오진을 줄일 수 있는 업데이트검증시스템과 긴급대응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트소프트는 지난해 10월 출시한 기업용 ‘알약 2.0’에 영국의 유명백신인 소포스 엔진까지 더해 트리플 엔진을 구현한 바 있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백신업체들이 정확도가 높고 폭넓은 진단율, 빠른 성능, 편리한 사용 환경을 제공하는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 중 한 가지 방안이 외산 백신엔진을 탑재하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국산 백신 7개 중 6개 모두에 외산 엔진이 탑재돼 있다는 점. 그 중 ‘비트디펜더’가 5개라는 점. 외산 백신엔진을 탑재해 출시하는 백신 제품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점이 참 씁쓸합니다. 사업 의지는 있지만 원천기술 개발 여력은 크게 부족한 국내 백신, 보안 제품 개발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댓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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