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5G 네트워크 장비와 관련한 청원 하나가 게시됐습니다. 내용인 즉 5G 이동통신망에 중국제품을 사용하지 말고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화웨이를 배제시켜달라'는 내용인데요. 청원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5G 개발한다고 정부에서 지원하고, 통신망 설치해야 한다고 정부에서 지원한다. 정부에서 이렇게 지원하면 통신장비를 국산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LG유플러스는 벌써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고 있고, KT와 SK텔레콤도 가성비가 좋다고 화웨이를 쓰려고 한다고 한다. 국내 중소기업에서 통신장비를 잘 만드는데 왜 국산을 안 쓰고 중국산을 쓰나. 이런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5G 통신망에 도입될 수 있는 중국산에 대한 우려와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지지와 관련한 여론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겠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좀 냉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론이 있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되는 문제입니다. 자칫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를 일으킬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기때문이죠. 국제 통상(무역)문제는 사실 총만 들지 않았을뿐 또 다른 전쟁터 입니다. 우리 정부가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럼 청원 내용을 좀 더 분석해 보겠습니다.  '정부가 5G를 지원하고 있으니 당연히 국산을 택해야 하고 이 중에서도 중소기업에 힘을 달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정부의 지원도 물론 있지만 5G 이동통신망에 대한 실제 자금 투자는 이동통신3사가 하는 부분입니다. 최근 정부는 5G 주파수 경매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18일 SK텔레콤 1조3258억원, KT 1조1758억원, LG유플러스 1조167억원에 5G 주파수를 낙찰받았죠. 총 3조6183억원을 정부에 내놓은 것입니다. 땅이 생겼으니 건물을 지어야겠죠. 5G 인프라와 각종 장비에 대한 부담도 이통3사의 몫입니다.

 

이통3사는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어떤 제품을 사용할 지는 스스로 판단합니다. 만약 이통 3사가 국산 장비에 대한 기업 불신이 크다면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시장의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동통신망은 국가 기간망이라 중요도가 크지만 정부의 직접적인 반중(反中) 규제가 들어간다면 그건 다른 문제로 번질 위험성이 큽니다. 

 

2000년대 초반 한·중 마늘 파동을 기억하십니까? 한국 외교에서 굴욕의 역사로 꼽히는 부분입니다. 2000년 6월 한국정부가 농가보호를 내세우며 중국산 냉동·초산 마늘 관세율을 10배 이상으로 올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일주일만에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금지하는 무역보복을 실시했습니다.

 

마늘을 살리려 했는데 삼성·LG를 비롯한 IT 기업들의 곡소리가 들렸죠. 결국 한국정부는 마늘 관세율을 이전수준으로 되돌리며 굴복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몇 년 후 한덕수 전 총리는 "1500만달러 상당의 중국산 마늘 때문에 5억달러의 수출이 피해볼 수는 없었다"고 언급한 바 있죠.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르면 외국 공급자 사이에 차별을 둘 수 없고, 국내에 합법적 절차로 들어온 외국 물품을 부당하게 국산품과 차별적 대우를 취할 수 없도록 명시돼 있습니다.

이것이 국제통상 조약에서 철저하게 중시하는 '호혜주의 원칙'입니다. 만약 이 원칙이 뚜렷한 명분없이 어느 한 일방에 의해 깨질 경우, 상대방 국가에게 보복의 명분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화웨이가 단순히 중국산이라는 정서적 거부감때문에 정부가 행정력을 발동해 이통3사의 제품 구매를 막는다면 이것은 호혜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반될 위험이 큽니다.   

 
화웨이에 대한 논쟁이 5G 시대에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나선다면 한·중 무역외교에 있어 리스크로 작용될 소지가 있습니다.따라서 5G 장비의 구매는 이통 3사의 자율에 맡겨놓은 것이 바람직합니다.

화웨이가 국산 장비보다 싸고, 제품이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통 3사가 무조건 화웨이 장비를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통 3사는 가격, 제품의 질 뿐만 아니라 향후 안정적인 장비 수급, 유지보수 등 여러 다른 요인들까지 감안해 5G 장비 구매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이통 3사는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 지난해 '사드' 사태와 같이  한-중간 마찰이 불거졌을 경우까지도 고려해 제품 구매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과 품질 못지않게 업체에 대한 신뢰 또한 제품 결정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과연 화웨이가 그런면에서 얼만만큼 우리 이통 3사로 부터 신뢰를 얻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편 '미국이나 호주는 화웨이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상황과 미국, 호주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미국은 중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고, 그 패권 경쟁의 일단이 최근 벌어진 미-중 무역전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논리대로 이 상황을 맞서야 합니다. 우리가 중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 중국 사이에서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접근법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과거 마늘 파동, 그리고 최근의 사드 사태가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중소기업 제품만을 사용해 5G 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5G를 주도하는 장비기업은 에릭슨, 노키아, 화웨이, 삼성전자 등으로 분류됩니다. 이들의 기술력을 따라잡은 국내 중소기업은 전무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강조해 온 한국의 5G 리더십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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