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사이 일본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 자회사인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는 외신이 나왔다. 이런 조짐은 이미 지난달부터 감지됐다. 도시바메모리 매각이 애초 예정된 시한인 3월을 넘긴 시점에서부터 중국 반(反)독점 당국의 승인 지연이 계속해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최고경영자(CEO)는 “기간 내 도시바메모리 매각에 전념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여러 대안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나,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도시바 자체의 상황이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덕분이다. 에너지사업 실패, 분식회계 등으로 한 푼이 아쉬웠으나 그린라이트캐피털, 에피시모캐피털매니지먼트 등 60여개 기금으로부터 돈을 수혈받아 급한 불을 껐다. 간단하게 말하면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도시바는 계속해서 방안을 찾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가만히 뜯어보면 원론적인 태도에서 바뀐 것은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매각이 최종적으로 불발됐을 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다시 인수자를 찾고 각국의 승인을 받는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와의 물밑 접촉에 힘이 실리지만, 현금 유동성에 여유가 생긴 도시바가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을 나름대로(?) 즐기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무역분쟁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도시바메모리는 나름대로 그들을 괴롭힐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도시바메모리에는 일본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INCJ)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IT 기업 4개사(애플, 델, 씨게이트, 킹스턴), 그리고 베인캐피털과 같은 미국 자본이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중국 관점에서 얼마든지 훼방을 놓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한 시간벌기라는 시각이 있으나, 도시바메모리가 매각되더라도 중국에 끼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신뢰도가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퀄컴의 NXP 인수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돌아와서 앞으로 도시바메모리 매각은 중국이나 일본, 혹은 한국의 입장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낮아보인다.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 브로드컴의 퀄컴 적대적 인수합병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도시바메모리 매각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중국을 다각도로 찔러볼 구석이 있다. 문제는 정치적 계산에 의해 별다른 이득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다. 일본은 미국을 설득할 이유가 없다. 도시바메모리가 안 팔리면 좋다. 그러니 남은 것은 미국 자본이 얼마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사태에 대해 인지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

 

안타깝게도 NXP 인수가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도시바메모리 매각이 더 우선순위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ZTE,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을 당분간 더 옥죄고 싶어할 가능성이 크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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