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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는 3차 산업혁명을 이끈 가장 큰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정보통신기술(ICT)의 기본이 되면서 4차 산업혁명에서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전과 달리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무어의 법칙’이지만 미세공정의 한계로 전혀 다른 형태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물론 무어의 법칙이 단순히 중앙처리장치(CPU)에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D램, 낸드플래시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전 세계적으로도 메모리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위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기사순서
① 메모리 반도체 기술 어디까지 왔나
② 차세대 메모리, 준비 상황은?
③ 4차 산업혁명 시대, 메모리 반도체의 미래

[IT 전문 블로그 미디어=딜라이트닷넷] 차세대 메모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만족시켜야 할 조건이 있다. 첫 번째 가격, 두 번째 성능, 세 번째 적용분야다.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온 PC는 D램이라는 걸출한 메모리 반도체의 영향을 제대로 받은 제품이다. MP3 플레이어의 등장은 본격적인 낸드플래시 시대를 열었다. 스마트폰, 태블릿과 같은 스마트 기기가 대중화된 시점에서도 D램과 낸드플래시의 영향력이 그대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과 성능에 있어서 이보다 더 쓸 만한 솔루션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조금 다른 부분이 요구된다.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가 더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사용했던 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이 더 강력하면서도 이제껏 없었던 기능을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차세대 메모리를 꼽아보면 강유전체 메모리(F램), 자기기록식메모리(M램)와 상변화메모리(P램) 등이 있다. 사실 이들 제품은 차세대라고 말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데 기본적인 이론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확립됐기 때문에 대중화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

먼저 F램은 전원이 끊어져도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일종이다. 낸드플래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속도도 빠르면서 내구성이 높고 전력소비량이 낮아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F램의 핵심은 역시 강유전체 그 자체에 있다. 강유전체는 말 그대로 강유전성(Ferroelectric)을 가진 재료를 뜻하는데, 외부에서 전기장이 가해지지 않아도 전기적 분극을 유지하는 자성을 가진다. 전기적 분극을 유지한다는 것은 극성을 바꿔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본 구조인 ‘0’과 ‘1’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내부적으로 살피면 D램과 거의 동일한 구조(1개의 트랜지스터, 1개의 커패시터)를 가지고 있어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가 빠르다. 문제는 셀에 이용하는 강유전체 재료인 ‘티탄산 지르콘산 연(PbZrTiO3, PZT)’을 사용한 박막은 두께가 일정 수준으로 얇아지면 분극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미세공정을 발전시킬수록 원가절감과 함께 용량이 커져야 하지만 F램은 이 부분이 쉽지 않았다.

현재 F램은 하프늄(Hf)과 산소(O)을 결합한 산화하프늄(HfO2)과 같은 새로운 재료의 발견으로 전환기를 맞았다.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용량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된 것. 이는 IoT에 극히 유리한데 EEPROM(electrically erasable programmable read-only memory)을 대체할 수 있어서다. 64Kb 용량의 데이터를 다시쓰기 했을 때 20MHz로 작동하는 EEPROM과 비교하면 780배 더 빠르다. 다시쓰기 횟수도 EEPROM이 1초간 100회 데이터를 다시 쓴다면 3시간 만에 수명이 다하지만 F램은 325년이나 버틸 수 있다. 전력소비량은 EEPROM이 2.7밀리와트(mW), F램이 0.027mW로 100배 정도 낮다. 빠르고 전력소비량이 적으면서도 내구성이 좋아 정전이나 사고와 같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압이 급격히 떨어지더라도 안전하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헬스케어와 같은 IoT 분야에 제격이다

P램은 P램은 ‘상(相)’ 변화 물질에 전류를 가하면 물질의 일부분이 결정질에서 비결정질로 변하고 이에 따른 저항 차이를 이용해 ‘0’과 ‘1’로 정보를 구분한다. 재료로는 게르마늄(Ge), 안티모니(Sb), 텔루늄(Te)이 결합된 ‘게르마늄 안티몬 텔룰라이드(Ge2Sb2Te5, GST)’가 대표적이다. 기존 CMOS(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공정을 그대로 사용하는 덕에 생산 공정 전환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P램도 F램과 마찬가지로 일부 분야에서 상용화가 이뤄진 상태다. 노어(NOR)플래시를 대체하는 용도로 쓰이며 기존 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 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공정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 프로세스 전환에 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역시 재료에 이다. 낸드플래시, F램처럼 비휘발성 메모리이므로 셀에 어떤 형태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GST는 물질의 상태, 그러니까 상변화에 필요한 시간이 1에서 10나노초(1나노초는 10억분의 1초)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요즘 판매되고 있는 D램이 10나노초 이하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만족스러운 성능이다.

다만 D램과 낸드플래시의 중간정도의 성능을 낼 수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틈새시장 공략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텔과 마이크론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3D 크로스(X) 포인트’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업계에서는 기존 메모리 기술을 활용한 눈속임이라는 의견에서부터 ‘탄소나노튜브(CNT)’나 탄소 원자가 5각형과 6각형으로 결합한 축구공 모양의 저분자인 ‘풀러렌’이 사용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새로운 물질로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구조 자체는 P램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일부 새로운 소재를 적용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F램, P램, M램과 같은 차세대 메모리의 최대 과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능과 가격이다. 각각의 메모리 반도체가 개발됐고 일부 상용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널리 쓰이는 D램이나 낸드플래시와 비교하면 아직까지 갈길이 멀다. 반대로 차세대 메모리가 하루빨리 개발되지 않으면 관련 업계에서도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에서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2017년에는 새로운 제품이 대중화를 통해 기술 발전의 물꼬를 틀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환기자 블로그=기술로 보는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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