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DNA는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술에 인문학을 융합해야 한다."

애플의 성공, 아니 고(故)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인문학과 첨단 IT기술의 융합에 있었다. 잡스는 기술 일변도의 하드웨어 시장에 그의 철학인 인문학이 반영된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이며 세계 ICT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잡스는 2011년 아이패드2 발표 기자회견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One more thing"을 생략하면서까지 인문학과 기술의 결합을 강조했다. 그는 "내 모든 기술을 바꿔 소크라테스와 오후를 보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인문학은 잡스에게 있어 절대적이었다.

세상을 떠난지 1년이 지났지만 잡스가 던진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화두는 여전히 현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잡스 사후 이후 애플이 혁신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잡스가 보여줬던 새로운 인문학적인 요소가 제품에 녹아있지 않았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확한 기술과 두루뭉실한 인문학의 융합은 쉽지 않다. 그럴싸해보이지만 너무나 추상적이다. 그래서 잡스를 천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잡스의 혁명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과거 정부의 인력 양성 프로그램 제목이 한국의 빌게이츠를 키우자 였다면 지금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자는 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잡스를 배우고자 하면서도 그가 강조한 인문학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심한 듯 하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며 예산을 편성하고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로 재편되는 ICT 생태계에 대응하기 위해 흩어진 ICT 정부조직 통합을 논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중심, 조직중심이다. ICT 정부 정책의 실패의 가장 큰 이유를 분산된 조직 기능으로 돌리는 이유다.

6일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이 던진 질문에 이계철 방통위원장의 답변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내년 방통위 사업 중 인문학과 연결된 내용을 묻는 질문에 이 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예산편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답해 질문한 최 위원을 당황하게 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예산편성 하다보면 여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잡스를, 애플을 배우자고 하면서도 성공의 핵심요소인 인문학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의 잡스를 육성하겠다면 보다 창의적 도전과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연 단순히 개발자 육성에 예산좀 배정한다고 잡스가 나올 수 있을까?

방통위는 ICT 벤처 생태계 부활 프로젝트인 K-스타트업을 시행하면서 실패한 벤처기업을 위해 패자부활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단기간의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이를 다시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들은 정책실패를 두려워 하고 있고 창의적인 도전은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ICT 강국 도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ETRI는 성과에 매몰돼 있고, 잡스를 배우자는 방통위는 인문학은 철저히 외면한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디바이스(D)와 네트워크(N)는 꾸준히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를 깨지 않는한 콘텐츠(C)와 플랫폼(P)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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