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존, 별존, 도넛존, 숙부존, 신판... 만약 이 단어들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야구매니아 이거나 최소한 한국프로야구(KBO)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다. 


‘퇴근존’은 경기가 이미 기울어 진 후반, 스트라이크 존이 갑자기 넓어진 판정이 나왔을 때 팬들로부터 나오는 냉소다. 심판(구심)이 경기를 빨리 퇴근하고싶어 스트라이크 존을 넓힌다는 뜻. ‘별존’은 스트라이크 탄착군이 일정하지 않고 좌우상하 들쑥 날쑥할 때 듣는 비아냥이다. 스트라이크가 찍힌 지점을 연결해보면 별모양이 된다고 해서 붙여졌다. 


‘도넛존’은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가끔씩 논란이 된다.  포수 한복판에 정확하게 꽃힌 공, 누가봐도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해버리는 경우다. 가운데(한복판)를 비어놓고 스트라이존을 만들면 도넛 모양이 된다. 심판이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서 벗어나도 칭찬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팀을 가리지 않고 ‘일관된 기준으로 판정’을 내릴 때 뿐이다. 

오심으로 경기의 흐름이 바뀌거나 결국 승패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공정’(公正)하지 않다는 주장이 확고해 졌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거센 반박을 받는다. 더구나 고화질 대화면 HD TV로 중계되는 시대다. 접전 상황을 리플레이(Replay)하는 비디오 판독 영상에선 0.5mm의 오차도 잡아낸다. 예전엔 몰라서 넘어갔다지만 지금 ‘공정’의 기준에선 결코 용납이 안된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로봇 심판’ 


지난 8월 4일, 프로야구 2군 리그인 퓨쳐스리그에서 국내에서 첫 시범 적용됐다. 타자 박스와 포수위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카메라가 설치되고, 투수가 던진 공이 정상적인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는지 여부를 판독해서, 심판에게 음성신호로 알려준다. 이 시간이 약 2초 정도 걸린다.

그리고 심판은 그 신호을 받아 스트라이크 또는 볼 판정을 내린다. 기존처럼 심판의 위치에 서서 스트라이크 콜을 하지만 그 판정은 기계(로봇)로부터 받은 것이다. 지금의 엄청난 ICT 기술을 고려했을때, 로봇 심판의 기술적 난이도가 그렇게 높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1개월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적용되고 있는듯 하다. 다만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한 가지에 대해 한 번쯤은 깊게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로봇 심판'의 오류 가능성이다. 즉, 로봇 심판도 인간처럼 실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있어서 인공지능(AI) 도입이 활발하다. 그러나 문제는 'AI(로봇)는 절대 오류가 일어날 수 없다'는 전제를 한다는 점이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과도 같은 것이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과정에서, 알파고는 인간계의 바둑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1선 착점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대국에선 알파고가 이겼다. 이 착점이 알파고의 오류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계산된 착점인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문제는 이러한 미묘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로봇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아무런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바꿔 말하면 로봇 심판이 내린 결정을 인간이 어디까지 신뢰하고, 승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만약 승복을 못한다면, 인간들은 결국 더 정교한 로봇심판, 더 강력한 기능을 가진 로봇심판으로 업그레이드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종착역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와 반비례해 인간의 역할은 점점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스포츠는 어느샌가 사람의 냄새가 나지않는 기계의 영역으로 치환돼 버릴까봐 사실 걱정이되기도 한다. 

인간의 영역, 모든 것을 로봇이 대체할 수는 없다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는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가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OB베이스에는 두 명의 이근식 선수가 있었다. 그중 키가 작은 외야수 이근식 선수를 소(小)근식으로 불렀다. 그리고 팀에서 월등하게 키가 큰 장신 선수가 한 명 있었는데, 긴다리를 벌려 멋지게 1루에서 포구를 한 ‘학다리’ 신경식 선수다. 두 명의 키 차이가 정확하게 어느정도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뜻봐도 꽤 큰 차이가 났다. 


문제는 이 두 선수 때문에, 경기할때마다 심판(구심)이 볼 판정을 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는 것. 190센티미터의 장신인 신경식 선수에게는 낮은 볼이 단신인 이근식 선수에게는 높은 볼이되기 때문이다.

심판은 어쩔 수 없이 선수의 키 차이를 고려한 상황에서 볼 판정을 달리 내려야했다. 아마도 투구의 루틴에 변화를 줘야했던 상대팀 투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가 타석에 들어서건 관계없이 ‘일정한 틀’안에 공이 들어오면 무조건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것이 ‘공정’이라면, 같은 기준이라도 누구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을 합리적으로 고려해 볼 판정을 내리는 것이 ‘정의’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번에 도입된 로봇심판도 사람의 키를 고려해 볼 판정을 내린다고 한다.)
 

참고로, 투수가 던지는 시속 150Km 강속구는 어느 정도 빠를까. 


만약 일반인들이 타석에서 서 본다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찰나에 포수 미트에 꽂힌다. TV화면에선 그 궤적이 보일지 몰라도 실제 상황에서 일반인들의 동체 시력으로는 그 궤적 조차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무시 무시한 속도의 공들을 심판은 판단하고, 결정한다. 요즘은 프로야구 한 경기에 양팀 통틀어 통상 250개 내외의 투구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물론 판단의 오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심판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되돌아 보게 된다.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가끔씩 심판을 욕하면서 야구를 봤지만 막상 ‘로봇 심판’이 등장한다니까 새삼스럽게 극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심판들에 대한 노고와 존경심이 생긴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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